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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DE FM : 바다 건너 여행지에서 채집한 음악

ODE FM : 바다 건너 여행지에서 채집한 음악

ODE 21. 06. 30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주인공 마르셀은 홍차에 적신 마들렌의 냄새를 맡고 어린 시절을 회상합니다. 이 이야기는 특정 향을 맡았을 때 추억을 떠올리게 되는 현상을 일컫는 ‘프루스트 효과(Proust effect)’의 유래이기도 합니다.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힘은 음악에도 있습니다. 듣는 것만으로 낯선 여행지에서의 추억이 떠올랐던 경험이 모두들 있을 거예요. 여행 작가, 영화 평론가, 패션 에디터 등 다양한 직업의 5인이 여행 플레이리스트와 그에 얽힌 추억 한 조각을 공유합니다.



출발 – 김동률
그저 살아내는 것이 목적인 척박한 땅 히말라야. 이 곡은 그곳에서의 여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게 해준 곡이다. 세상과 단절된 길 위를 먼지 낀 카메라, 때 묻은 지도만 손에 쥐고 걷던 때가 떠오르는 곡.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 매일 아침 첫 발을 디딜 때의 설렘 덕에 하루하루가 행복했다. 특히, 드넓은 황야에 누워 새 출발을 상상하며 노래를 감상할 때는 두근거림에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이따금씩 이 노래를 들을 때면 히말라야를 누비던 패기 충만했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나에게 있어 ‘출발’은 힘들 때 용기를 주는 그런 곡이다.
– 책 <당신의 방황을 인도로 가져갈게요> 저자 박남재

<백야> 짙은
대학생 새내기 시절, ‘내일로 기차’를 타고 경주로 떠났다. 폭우가 쏟아지는 예상 밖의 날씨였지만 계획했던 자전거 여행을 강행했다. 빗물에 핸드폰이 고장날지언정 음악을 크게 틀고 달리고 싶었던 나의 선곡은 짙은의 <백야>. 빗소리와 차 바퀴 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도 않았던 노래를 흥얼거리며 보문단지를 쉼 없이 달렸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고급 호텔에 묵고, 호화스러운 식사를 하고, 화려한 행사에 참석하는 자극적인 순간들을 오히려 덤덤하게 마주한다. 특별할 것 없었던 순간을 가장 찬란한 여행으로 남을 수 있게 해준 그날의 음악을 여전히 그리워하면서.
—패션 에디터 정길원

왈 – 씨잼
아무런 목적 없이 그리스 미코노스 섬의 아름답고 신비로운 골목길을 누비고 다녔다. 늦은 밤이었지만 낮보다 사람이 많았고 코너를 돌 때마다 다른 음악이 들리는 바가 나타났다. 분명 전 세계 사람들이 모인 것이 확실해 보이는 섬. 모두 자신만의 춤을 추고 있었고 나도 한국 대표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이어폰을 꽂고 한창 빠져 있던 씨잼의 앨범 [킁]을 틀었다. “가끔은 너와 내가 말이 통하는 게 이상해.” 마지막 트랙 <왈>에 나오는 가사다. 그때 함께 몸을 흔들던 사람들의 말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왠지 통한 것 같긴 하다. 하루 빨리 그 이상한 기분을 다시 느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 씨네21 영화평론가 김철홍

When You Wish upon a Star – Cliff Edwards & Disney Chorus
어릴 적 주말이면 디즈니 만화동산을 봤던 내 또래라면 공감하겠지만 디즈니 영화의 타이틀이 시작될 때면 동심으로 돌아가곤 한다. 그리고 홍콩 디즈니랜드에서 운명처럼 그 장면을 직접 마주했다. 디즈니랜드의 하이라이트인 불꽃놀이가 시작되자 영화 타이틀 장면처럼 신데렐라 성 위로 별 하나가 포물선을 그리면서 날아갔다. 그때 흘러나왔던 음악이 바로 ‘When You Wish Upon a Star’ 이다. 이 곡과 함께 불꽃놀이를 보고 있으니 왠지 모르게 심장이 뛰면서 눈물이 고였다. 지금도 이 곡을 들으면 그 순간으로 돌아간 듯 쌀쌀했던 날씨, 폭죽 냄새, 그날의 분위기까지 느껴진다. 누구나 인생에서 행복했던 기억이 있고 우린 그 기억을 가끔씩 꺼내어 보며 살아간다. 나에겐 이 음악이 그날의 추억을 담은 작은 보석함이다.
– ODE 사운드 컨시어지 윤주혜

긴 여행을 떠나요 – 권순관
여행지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설렘으로 잠 들지 못하는 낯선 침대에서, 나도 모르게 매번 찾아 듣는 앨범이 있다. 권순관의 [A Door]. 그중에서도 첫 곡은 늘 <긴 여행을 떠나요>다. 이 노래를 들을 때면 스무 살 첫 여행, 모든 게 처음이라 긴장되고 떨렸던 그때가 떠오른다. 떠나 오길 잘했다고, 특별하지 않아도 좋다고. 어린 나를 토닥이는 목소리에 아쉬웠던 하루를 달래며 잠들었던 그 순간. 이제는 어엿한 어른이 되어 낯선 곳으로의 여행에 익숙해졌지만 여전히 나의 여행을 채우고 있다.
– 유튜브 영상콘텐츠 기획PD 조혜진